왜 한국의 인재는 외국계로 향해왔는가 : 헬스케어 산업 구조가 만든 보이지 않는 흐름
한국에서 헬스케어 산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우리는 기술은 좋은데 시장에서 성과를 못 낸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이 문장은 단순한 자조가 아니라, 지난 20년간 한국 헬스케어 산업의 구조적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장 속에는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다. 바로 “왜 가장 뛰어난 한국 인재들은 외국계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아왔을까?”이다.
나는 외국계 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면서, 그리고 지금 국내 상장사의 대표로서 한국의 시스템을 매우 가까운 위치에서 바라보면서 이 질문의 ‘진짜 이유’를 누구보다 깊게 체감해왔다. 이것은 단순히 보상, 브랜드, 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인재는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그 성장이 가능한 ‘산업적 구조’가 그동안 한국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 있었다는 사실이 본질이다.
1. 한국의 의료는 세계 최고지만, 산업은 아직 미완성이다
한국은 의료 강국이다. 의사의 임상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의료의 접근성, 환자 데이터의 품질, ICT 인프라 등은 글로벌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의료기기, 헬스케어 산업은 단순히 ‘좋은 기술’이 있다고 성장하는 분야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산업은 기술 50 / 임상 20 / 규제 15 / 보험·시장 구조 15 에 의해 움직인다. 한국은 기술과 임상에서는 탁월했지만, 그 이후 단계 즉 산업화의 엔진을 만드는 데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
-한국의 기술 → 세계 최고
- -한국의 임상 → 세계 최고
- -한국의 산업화 체계 → 이제 막 시작
그 결과 인재가 경험해야 하는 제품 개발 → 임상 → 규제 → 보험 등재 → 시장 확장 → 글로벌 스케일업 이라는 완결형 사이클은 전통적으로 외국계 기업에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인재들은 자연스럽게 외국계로 향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도, 회사의 문제도 아니었다. 단지 성장할 수 있는 곳이 외국계에 존재했다는 것 뿐이다.
2. 한국 기업에 부족했던 것은 ‘기술’이 아니라 ‘Full Industrialization Process’였다
외국계 기업에서 산업은 과학이다. 규제 전략은 10년 단위로 투자되고, 임상 설계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돌아가며, 보험 등재는 국가별 데이터, 트렌드에 따라 정교하게 설계된다.
예를 들어, FDA 510(k) 하나만 해도
• Predicate 기준 선별
• Substantial Equivalence 전략
• IEC, ISO 기반 시험 설계
• Human Factor Study
• Cybersecurity 대응 문서
• Clinical Evaluation 기반 Evidence Mapping
이 촘촘히 연결되어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형성한다. 반면 한국의 많은 기업은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도 임상·규제·보험 구조의 완결형 설계를 위한 조직적 경험이 부족했다. 기술은 세계 최고이지만 기술을 산업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 ‘사이클’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인재들은 기술만 만드는 곳이 아닌 기술이 산업화되는 곳에서 커리어를 만들기 위해 외국계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3. 인재의 문제는 아니었다. 환경이 문제였다
나는 수많은 국가의 인재들과 일했다. 그리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의 인재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 뛰어나다.
한국 인재는
• 복잡한 기술 구조를 빠르게 이해하고
• 의료 시스템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 새로운 규제를 빠르게 학습하며
• 집중력과 일처리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인재들이 외국계로 갔던 이유는 외국계가 더 뛰어나서가 아니라, 한국에는 산업 전 주기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재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인재가 뛰어날수록 갈 수 있는 ‘산업적 구조’가 한국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4.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산업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한국 헬스케어 산업이 역사적 변곡점에 있다고 확신한다. 이 확신은 비전이 아니라 현실이다. 왜냐하면 다음의 요소들이 지금 한국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세계에서 가장 빠른 초고령화 : 근감소증, 보행 장애, 정형외과·신경계 문제는 앞으로 20~30년간 핵심 질병군이 된다.
- 의료 데이터 접근성 세계 최고 : 한국만큼 대규모 환자 데이터를 빠르고 고품질로 수집할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
- 로봇 공학과 ICT 기술력 : 한국은 이미 로봇·반도체, 전기, 제어, 센서 기술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 국가의 헬스케어 규제 혁신 : 디지털 치료기기, 원격의료, 인공지능 의료기기 등 다양한 규제 완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이 모든 요소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바로 웨어러블 로봇, 그리고 Physical AI 산업이다. 이 산업은 아직 글로벌 절대 강자가 없고, 기존 의료기기 산업과 완전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어 한국의 기술과 임상 인프라가 세계에서 가장 유리하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이 산업에서는 한국 기업 내부에서도 글로벌 기준의 산업화 사이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5. 외국계가 아니라 한국에서 글로벌 커리어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나는 외국계에서의 경험을 매우 소중히 생각한다. 그곳에서 산업화의 본질을 배웠고,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의 구조를 몸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엔젤로보틱스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나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기술–임상–데이터–규제–보험–사업화–글로벌 확장 이 하나의 산업 안에서 완결되는 작은 우주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한 회사의 기회가 아니라, 한국 인재 전체가 새로운 커리어 기반을 갖게 되는 변화의 시작이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기술로 한국의 인재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만들 수 있는 산업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앞으로 “외국계로 가야 성장한다”는 공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6. 이제 한국은 새로운 산업적 토양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산업의 확장이 아니라 구조적 재편이다. 그동안 외국계 기업만이 제공해왔던 ‘전 주기 산업 경험’을 이제 한국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재의 이탈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인재가 한국 안에서 성장하고, 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산업적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헬스케어 산업은 기술, 의료, 데이터, 규제, 사업화가 동시에 움직이는 복합 생태계다. 이 생태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기업, 병원, 학계, 정부가 함께 긴 호흡으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한국이 그 긴 호흡의 첫 단계에 서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변화의 흐름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한국의 기술과 인재를 한국 안에서 제대로 성장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구조를 만드는 주체가 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한국의 인재는 충분히 뛰어나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인재가 한국에서 성장하고, 한국의 산업을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산업적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 헬스케어 산업은 이미 중요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10년은 우리가 어떤 구조를 만들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 인재의 미래와 산업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Chief Executive Officer at Angel Robotics